Holocaust Memorial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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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 이틀 남겨둔 수요일 아침, 워싱턴 디씨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다녀왔다.

미국 수도 한복판에 이런 기념관에는 어떤 역사와 세월의 기록이 남겨져 있는것인지 알고 싶어서 친구랑, 딸아이, 딸아이의 친구 이렇게 넷이 기념관에 들어가자 안내원이 남/녀로 구별된 신분증을 하나씩 가져가라고 안내해 주었다.

사진처럼 작은 수첩모양의 신분증이 수천부 쌓여 있었고, 내가 집은 신분증은 폴랜드에서 출생한 소녀의 것이었다. 물론 실제 나찌 수용소에서 희생당한 실존 인물의 사진과, 짧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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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층 아래로 내려가는데 다분히 의도적인 엘리베이터의 내부 구조 – 철문에 찍혀있는 손자국들, 천정에 달려 있는 알전구들이 벌써 스산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데 충분했다.

사진은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얼마든지 찍어도 된다고 했지만 기념관 내의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때문에 차마 셔터에 손을 대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념관을 통과하며 참 많은것을 느끼게 되었다.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그리고 게토, 나찌의 개스 챔버등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수박 겉핥기식 얕은 지식이었는지 몇분이 지나면 바로 느낄수 있다. 기념관은 독일군이 침공하기전 유럽에서 살고 있었던 수많은 유태인들의 평범한 삶에 초점을 맞추고 시작한다. 많은 사진 자료와 흔하진 않았을 비디오 클립을 전시하면서 회사원으로, 선생님으로, 가정의 가장으로, 자식으로, 부모로 살아가는 평범한이들의 일상을 지나가면 나찌 독일이 얼마나 철저하고 전략적으로 이들을 억압하기 위한 그물을 짜고 이들을 포위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인종을 구별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수집해 비교용 쌤플을 만들고, 피부의 색상, 콧대의 높이 등등 이 황당한 모든것이 마치 과학적으로 근거를 둔 사실처럼 둔갑을 하고, 짐승도 옮기기 어려웠을만한 열악한 기차칸에 짐짝처럼 채워져 수용소에 던져진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워낙 잔인하고, 극악무도했던 역사인지라 몇몇 구역은 벽을 쌓아올려 보고싶은 이들만 관람을 할 수 있게 배려해 준 공간도 있었다. 개스 챔버를 모형으로 만들어 어떤 순서로 수용소 사람들을 이끌고 갔는지, 어떻게 탈의를 하게 한 후 개스로 질식사를 시켰는지를 한 눈에 볼수 있었고 수용소의 방대한 크기를 조감도를 통해 볼 수 있었다.

1층과 2층이 통해져 있는 복도에는 벽과 천장까지 빼곡히 이들이 수용소에 수감되기 전 찍어두었던 카메라에서 현상한 사진들이 걸려 있는데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 새침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가씨들, 열심히 수레를 끌고 가는 일꾼의 모습들 그야말로 빼앗긴 “일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이들을 학살할때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하게 모든것을 빼앗았고.. 그결과 남겨진 수천켤레의 신발들도 역시 전시되어 있는데 벽과 통로사이에 유리벽을 올려 그 사이에 신발들을 전시했다. 한켤레 한켤레 짝을 맞춘것이 아니라 수용소에서 가져다가 그야말로 덤프해버렸을 그런 신발 무더기 모양과 거기에서 느껴지는 슬프고 공포스러운 냄새까지 마음을 흔드는 공간이었다.

각 수용소에서 흙을 가져다가 만들었다는 추모의 공간에서는 이곳 저곳에서 눈물을 훔치고 흐느끼는 사람들을 볼수 있었다. 나오는 길에 입구에는 이미 30-40명 정도가 입장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계시는 위안부 할머님들을 생각하니 더더욱 마음이 갑갑해져 왔다.
독일정부에서 배상이고 배상 할아버지를 해도, 아무리 회유하고 사죄해도 이 기념관 안에 있는 신발한짝에 묻은 먼지 한톨도 어찌하리 못하리라는 그런 힘이 느껴졌기에. 아 속상해.

용서는 해도 잊지는 말아야 한다는 교훈 그 자체인 기념관이다.

  http://www.ushmm.org/

 100 Raoul Wallenberg Place, SW Washington, DC 20024-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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